나는 어떻게 행복한가

벌써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겠다.

작성기간: 2025. 10. 6 ~ 2025. 12. 7  |   Read time: 40


최근에 이석증에 걸렸다. 그래서 많이 아팠다. 눈앞이 핑핑 돌고, 술에 취한 것처럼 어지러웠다. 아프니까 일에 집중도 잘 안 되고, 잠도 잘 안 오고… 힘들더라. 이 상태로 며칠 좀 살았다. 근데 잠이 안 와서 자기 전에 생각할 시간도 많았다.
그러다 문득 요즘 내가 행복한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더라.

그리고 아프면서 떠올랐던 내용이 너무 많고 난잡하다. 글로 깔끔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의 시작부터..

“나는 언제 행복할까? 또 행복할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단순히 말하자면 행복은 살아가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조금 더 깊이 고민해보고 싶었다.

칠정

나는 감정의 기복이 적다. 그래서 쉽게 즐겁고 빠르게 행복해진다. 반대로 빠르게 우울해지기도 한다.

예로부터 유교에는 칠정(七情)이라고 감정을 7개의 요소로 정의한다.
그리고 칠정은 기쁨(喜), 분노(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증오(惡), 욕망(慾)으로 이루어진다.

하나하나를 나에게 대입해보면,

나는 기쁨을 느끼는 허들이 낮다. 웃음이 많고 쉽게 기뻐한다.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는 대화에서도 잔잔한 기쁨을 느끼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는 큰 기쁨을 느낀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작은 동물을 보고 귀여워하며 기뻐하고, 주변 동료들의 인정이나 칭찬을 들을 때도 기쁘다. 겉보기에 평범한 상황 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쉽게 기쁨을 느끼는 편이다.

요즘은 분노하는 일이 적다. 어릴 때는 쉽게 화가 났다. 내 감정을 다루는 게 서툴렀고, 표현하는 건 쉬웠다. 남에게 화를 내면 돌아오는 반응을 보고서야 행동을 조절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급격히 철이 들었고, 자기객관화를 자주 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내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도 감정을 다스리는 건 여전히 어려워서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실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6년 넘게 하며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이 몸에 익었다. 이제는 화가 나도 금세 가라앉히고, 친절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슬픔이 싫다. 이제 내년이면 스물다섯 살이 된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슬픔을 더 자주 느끼게 된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한 일에도 울컥하고, 공감하게 된다. 슬픔은 감염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슬프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감정이 자연스레 퍼져 모두가 우울해진다. 그래서 슬픈 생각이 들면 빠르게 해결책을 찾는다. 다소 로봇 같은 방식이지만, 슬픔이 싫은 나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슬퍼서 힘든 것보다 고민하며 힘든 게 차라리 낫다.

매일매일이 즐겁다! 도파민 넘치게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한다. 회사, 집, 밥, 잠, 운동으로 이루어진 매일을 반복하다 보면 종종 지루함이 찾아오곤 한다. 지루함에서 벗어나기보다, 하루 사이사이에 작은 즐거움을 더하려고 한다. 친구나 좋아하는 사람과의 짧은 카톡도 즐겁고, 퇴근 후 잠깐 즐기는 클라이밍이나 헬스도 재미있다. 나는 내가 언제 즐거운지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미칠 듯이 사랑하고 싶다. ‘좋아한다’와 ‘사랑한다’는 전혀 다르다. 사랑은 무척이나 무겁고도 가볍고, 쉽고도 어렵고, 좋으면서도 싫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미칠 듯이 사랑하는 게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고 꼭 필요하다.

증오한다는 건 망가져 간다는 뜻 아닐까? 증오, 시기, 질투, 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자기객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자주 관찰하는 나로서는 그런 감정이 생길 일이 많지 않다.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전에는 그렇게 나를 괴롭혔다. 하루는 짧고 고민은 많은데, 쓸데없는 생각으로 나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나는 욕구에 솔직하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실수하거나 포기하지만, 나는 나의 욕구를 잘 달성하는 편이다. 오랜 시간 노력해야 하더라도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는다. 단지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좋은 인연을 잘 활용하면 욕구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욕구가 쌓여 욕망이 되는 일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내가 유교를 좋아하기도 하고,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것 같아서 가져와봤다. 유교에선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인(仁)과 같은 도덕적 가치를 실천하고 사회적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나의 감정에는 보통 타인이 영향을 준다. 칠정 모두 타인과 함께할 때 발생한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작은 선행을 베풀며 행복을 느끼고, 반대로 타인에게서 받는 사소한 배려로 기쁨을 느낀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다툴 때에는 분노나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나는 정말 행복하다.

2년 전만 해도 사람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게 어렵고 귀찮았다. 필요한가? 싶기도 했고, 집에서 혼자 게임하거나 책 읽는 게 더 좋았다.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게임하고 통화하는 게 더 좋았다. 그렇다고 사람이 싫었던 건 아니다. 그때도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대에 기쁨을 느꼈고, 선행을 하며 행복했다. 다만 대화를 시작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랐고 어려웠다. 애초부터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 걸 보면, 이것조차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성격 때문에 주변 동료나 친구들에게 ‘나를 피한다’거나 ‘멀어지려 한다’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이러한 오해가 싫었는진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하나하나 바꾸기 시작했다. 더 듣기 좋게 말하려 노력하고, 더 잘 읽히도록 정리해서 전달했다. 이제는 사람을 마주하는 게 어렵긴해도 무섭지는 않다.

이처럼 변화해온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즐거운 것 또는 나를 위해 집중하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정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행복이 무엇인가’ 보다는 ‘어떻게 해야 매일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매일이 행복하기만 하면 나는 어떨까’ 가 더 궁금하다. 그래서 또다시 나 자신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봤다.

장단점

내 생각엔, 오늘날의 나는 생각보다 이상적인 사람이다.

  • 경제적 자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빠르게 좋은 커리어를 쌓아왔다. 또 '일'이 족쇄로 다가오지 않는다.
  • 스트레스 관리: 즐거운 취미가 여럿 있다. 그중에는 클라이밍이나 러닝 등 건강을 위한 운동도 있다.
  • 믿을 수 있는 사람: 친구, 직장 동료, 가족, 애인 등 내가 좋아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 확고한 가치관: 명확한 인생의 목표가 있고, 어떻게 도달할지 자주 고민한다.
  • 책임감: 내가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행복하다.

하지만 나는,

  • 귀찮음: 사람을 만나는 건 귀찮다. 약속이 취소되면 기뻐하고 집에 누워 있으면 편하다.
  • 많이 숨긴다: 편함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걸 숨긴다. 물론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는 조금 더 숨긴다.
  • 불필요한 고민: 생각이 많은 편인데, 불필요한 고민도 많이 한다. 나는 눈치가 빠르지만 때로는 바보같이 눈치 없기도 하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지금처럼만 살다가 인생 졸업하고 싶다. 나는 그만큼 지금 내 삶이 맘에 들고, 행복하다.

성격

MBTI 이야기를 해보면, 나는 INTP이다.
생각이 많아서 늘 고민한다. 또 내향적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귀찮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평소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눈치

나는 어려서부터 눈치가 빨랐다. 어렸을 땐 주변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썼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쟤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왜 웃는 거지? 내가 잘못한 게 있나?처럼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쓴 고민을 많이 했다. 많이 어렸을 때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심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점점 주변의 시선보다 내게 내키는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기숙사 고등학교다. 전교생이 필수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고 각자의 집에는 짧으면 주에 한 번, 길면 세 달에 한 번꼴로 갈 수 있었다. (평일은 학교에서 생활해야 하고, 주말에는 집에 가는 시스템. 그리고 주말에 안 가도 괜찮지만 3달에 한 번은 갔던 것 같다.) 나는 원래 친구들과 친해지는 걸 어려워했지만, 매일을 붙어 있어서 그랬는지 친구들과 빠르게 가까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사교성 있게 살았다. 동문 중에도 가까운 친구들이 많았고, 선후배 관계에서도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물론 때때로 눈치 없는 행동을 해서 친구들의 흥을 깬다던가, 나대면서 설치다가 분위기가 싸해지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에는 이렇게 나로 인해 분위기가 싸해지면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서 혼자 눈치 보며 뻘쭘해했다. (지금은 웃어 넘김…)

아무튼 지금도 여전히 눈치가 빠르다. 과거에는 눈치 빠른 게 나를 위축시켰다면, 오히려 지금은 분위기를 빠르게 읽어 상황에 맞는 행동 판단에 유리하다던가, 친구나 애인과의 대화에서 상대의 요구를 빠르게 캐치하고 센스 있게 대답하곤 한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의 결정을 위한 근거로써 활용하게 된 지금. 나는 꽤 만족한다.

(과거를 떠올리다 보니 재밌는 추억들이 많다. 고교 생활에서 여러모로 크게 배운 것 같다.)

가면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속마음은 삼키고 듣기 좋은 말만 해준다던가, 대화해보다가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으면 더 이상 가까워지려 노력 안 한다던가, 또 어느 정도 친하더라도 선을 넘거나 귀찮아지면 빠르게 손절하게 되었다. (더 가까워지려 먼저 노력을 안 한다.) 나는 이 습관을 가면 쓴다라고 표현한다.

자기객관화를 좀 해봤는데, 나에게는 4단계로 이루어진 가면이 있는 것 같다. (가면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옅어진다.)

  • 1단계 가면: 기본적으로 접점이 없었거나 앞으로도 적을 것 같은 사람에게 활용
  • 2단계 가면: 꾸준한 접점이 있거나(예정이거나), 애매하게 친한 어색한 사이
  • 3단계 가면: 가벼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
  • 4단계 가면: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

1단계 가면: 기본적으로 접점이 없었거나 앞으로도 적을 것 같은 사람에게 활용

나는 관심 없는 사람에게 차갑다. 여기서 차갑다는 건 불친절하다는 게 아니고 그저 말을 아낀다. INTP인 나로썬… 사람과의 대화에서 에너지를 많이 쓴다. 무엇보다 귀찮고 관심도 없다. 그래서 때로는 직장 동료에게마저도 우리랑 밥 먹는 게 불편하냐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근데 확실히 여럿이서 먹는 것보단 혼자 먹는 게 편하다.)

그리고 1단계 가면은 특히 내가 공감이 안될 때 씌워진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지인이나 동료와 대화할 때나, 첫인상이 안 좋은 불편한 사람과 대화할 때 심하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모두에게 차갑지는 않다. 나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사회적 약자나 호감 가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겠지만(?) 먼저 다가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계속 봐야하는 사람들에게는 1단계 가면은 그저 잠시 머무르는 임시 단계에 가깝다.

2단계 가면: 꾸준한 접점이 있거나(예정이거나), 애매하게 친한 어색한 사이

대부분의 겉지인은 2단계 가면을 쓰고 마주한다. 나를 드러내지는 않고 사회적 지위에 맞는 말투와 어투로 대화한다. 예를 들어 가까운 친구가 아니라면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되 충분한 선을 지키고 예의 있게 대화한다. 또 직장 동료라면 사무적인 말투로 대하지는 않으나 (편하게 보이려고 해요/어요 체를 사용) 비즈니스 내용이 전부이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의 대화는 아마 2단계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잘 읽히는 글쓰기, 잘 들리는 말하기에 관심이 많다.

3단계 가면: 가벼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

다음으로는 가벼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면 또 새로운 가면을 쓴다. 내가 생각하는 신뢰의 선에 도달한 사람들이고, 같이 있을 때 침묵이 어색하지 않다.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이 말도 잘 통하면 금방 친해지고 가벼운 고민까지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보다 보니 알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가면을 쉽게 벗는다. 단지 경계가 많을 뿐 마음의 문을 여는 허들은 매우 낮다.

4단계 가면: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

사실 4단계는 가면을 안 쓴 것과 거의 똑같다. 단지 베스트 프렌드와 일반 프렌드의 차이 정도이다. 정말 가까운 친구들과는 짓궂은 장난도 많이 치고 선 넘는 농담도 하곤 하지만, 가면을 쓸 때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대화한다. 정말 이 정도 차이이다.


가면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건 20살 때부터이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사람을 대하는 데 패턴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정리해보니 대화의 심리적 허들이 생긴 것 같더라. 가면이라고 표현하니 연기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지만, 나는 각각의 가면도 모두 ‘나’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앞으로도 가면은 계속해서 쓰고 살아갈 거다. 하지만 최소한 가면의 단계를 더 늘리고 싶지는 않다.
어서 성장해서 가면이 점점 줄어들면 좋겠다.

어떻게 행복하지?

아무튼 ‘어떻게 해야 매일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매일이 행복하기만 하면 나는 어떨까’ 를 위해 나를 다시 돌아봤다. (타임라인 순서대로 하나하나 돌이켜보니 꽤 재밌고 신기하다. 내가 많이 변했구나 싶기도 하고 더 성장해서 바꾸고 싶은 게 남아 있구나 하는 마음도 든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의 행복 조건을 찾아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위에 정리한 ‘나’의 특징들을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복 기준과 비교해가면서 나만의 행복 조건을 만들어봤다.

일반적으로 이러면 행복한가?

돈, 사랑, 일과 인정. 이것들은 내가 뽑은 행복 지표를 이루는 포인트 요소들이다. 어떤 사람은 이 중 하나만 완벽하게 충족해도 행복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모두가 해당되어도 불행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기준을 세울 수 있는 포인트 요소를 뽑아서 비교해보았다.

나는 돈이 좋다. 병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건 아니고, 돈은 많을수록 좋다. 다만 나에게는 돈이 현생을 살아가는 수단으로써 작용한다. 즉, 내가 만족할 만큼의 소비를 해야 한다. (시작 문장이 폭력적이라 저축 안 하는 바보처럼 보일 것 같다.)

이제 내년이 되면 나는 6년 차 개발자가 된다. 또 운이 좋게도 첫 직장을 배울 점 많고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졸업해서 1인분 이상 할 수 있게 성장했다. 그리고 1인 가구로써는 배 터지게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살 수 있을 만큼의 고정 수입이 있다. 운 좋게도 좋은 환경이 갖춰지다 보니 돈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은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위한 저축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고, 부모님을 위한 용돈도 드린다. 친구들을 불러 맛있는 밥을 사주기도 하고 술을 사주기도 한다.

아 물론 돈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현금 흐름 계산을 잘못해서 약간의 빚도 있고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행할 만큼의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사랑

어쩌면 나에겐 사랑이 삶의 원동력일 수도 있다.

오늘의 나는 연애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친구나 친한 동료들에게 소개팅 주선을 부탁하거나, 제안 오는 소개팅을 거절하지 않았다. 소개팅에 나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에도 신경 쓰고, 큰 관심 없던 패션도 공부했다. 소개팅을 처음 할 때에는 너무너무 긴장되고 걱정되어 바보같이 지인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설레서 밤잠 못 이룬 적도 있다.

완전 모르는 사람 둘이 만나 서서히 알아가는 소개팅에서 상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센스 있는 농담을 던지거나, 상대의 성향을 눈칫것 파악해서 좋아할 것 같은 대화를 만드는 등 나에게 유리하게 대화를 이끄는 방법도 익혔다. 처음에는 미숙하다 보니 실패가 있었고 이로 인해 자존감이 꺾여 우울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 경험이 쌓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이 늘어갈 때 즈음엔 새로운 사람에게 호감을 만드는 대화에 부담이 적어졌다. 이러한 행동 전부를 미래의 나를 위한 연습 또는 내가 만든 가치라고 생각하니 이성적으로는 여러모로 성장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많다. 점점 소개 받는 조건을 맞추게 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하기도 하고, 애프터 신청을 하거나 받을 때에 '호감이 많이 없어도 한번 더 확인해보자.' 하는 생각에 깊은 고민 없이 수락하는 배려 없는 행동을 하게 되고, 종국에는 감정의 정리가 안 되었지만 소개팅하는 상대를 무한히 만나볼 수는 없으니 마무리를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는 내가 한심하다.

마지막에 나갔던 소개팅에서 이러한 생각의 괴리에 빠지고 거절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끈끈하고 따뜻한 연애를 포기하기는 싫었다. 계속해서 사랑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비로소 정리가 되었다. 사랑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기쁨을 공유하고 사소한 행동에도 웃을 수 있는 베스트 프렌드가 있었으면 한다. 어쩌면 소개팅을 반복하다가 만날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내가 알던 사람에게 호감이 생겨 만남을 이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과거의 연애를 돌아보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을 알았는데,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정서적으로 행복하고 기분이 계속해서 업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모든 행복의 수단 중 단연 1등으로 꼽힌다. 사랑에서 나오는 도파민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작용한다.

일과 인정

나는 일이 좋다. 또 나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때 엄청난 만족을 느끼고 이것이 동기로 작용된다.

나의 한 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코 일이다. 바쁜 업무로 이루어지는 하루는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관리하는 소스코드의 유지보수부터, 넓은 도메인 영역의 컨텍스트 스위칭과 새로운 제품 개발을 위한 팔로우업, 매일매일 들어오는 제품 버그 알림, 다양한 회의 등 매일 챙겨야 하는 내용이 다르고 혼란스럽다. 지금은 어느새 경력이 쌓인 만큼 일 처리에 능숙하고 과거보다 편안하게 컨텍스트 관리가 가능하다. 혼란스러운 일들을 하나하나 리스트업하고 빠르게 쳐나가는 게 재미있고, 뿌듯하다.

바쁜 하루가 지나고 퇴근 후 집에 온다고 업무가 끝나는 게 아니다. 집에 와서 다시 노트북을 켜고 회의 때문에 못 한 일을 이어서 하거나 내일 할 일을 미리 정리한다. 또는 다음 회의 준비를 하거나 개발 문서를 읽는다. 이렇게 평일을 지나고 주말에도 종종 일한다.

지금은 업무 강도가 높음에도 능력이 되니까 큰 무리 없이 적응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어렵고 힘들었다. 나는 범재이다.

전 직장도 업무 강도가 높았다. 매일 야근하기 십상이고 주 50시간 이상 근무하는 건 기본이었다. 능력이 부족해 퍼포먼스가 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서 일을 더 많이 하고 노력했다. 힘들어서 회사에서 회의하다가 엉엉 울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일을 재밌게 하기 위해 퇴근 후의 경계도 만드려고 노력했다. 결국에는 우울한 감정이 너무 커져서 출근하기가 싫어지고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그때마다 주변 동료들에게 도움 받고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팀에서 인정받는 부분이 하나씩 생기더라. 내가 낸 성과를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한 명씩 생겼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나에게 도움을 구해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샤라웃과 같은 인정들을 받으며 같이 일하고 싶은 개발자라는 인식이 심어졌다.

이때부터 인정이 주는 행복에 매료되었다. 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양한 부분에서 노력을 이어갔다. 내가 일을 더 즐겁게, 잘하기 위한 고민도 많이 하고, 먼저 나서는 연습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주변에 좋은 동료로 기억되기 위해 열심히 헌신한다.

나는 이럴 때 행복/불행했다.

또 다른 방식으로 나의 행동에서 행복 요소를 찾아보았다. 내가 어떨 때 행복하고 불행해지는지 특정 상황을 뽑아서 고민해봤다.

행복할 때

사실 긍정적인 나로썬 쉽게 즐거워지는 편이다. 출근길에 외힙을 들으면서 비트 타며 걷는 것 하나만으로 흥이 나고 신이 난다. 그렇지만 내가 특히나 행복을 느낄 때를 뽑아보았다.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하루가 따뜻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느낌이 들 때,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는 걸 느낄 때 행복하다.

  • 친구들과 함께할 때: 아무 걱정 없이 웃고 떠들고, 쓸데없는 얘기나 게임하면서 밤새워도 재밌을 때. 내가 나답게 있어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을 때 행복하다.

  • 운동할 때: 땀 흘리면 머릿속이 비워지고,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게 보이고 만족할 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보일 때 뿌듯하고 행복하다.

  • 맛있는 걸 먹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맛있는 음식을 한입 먹었을 때,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진다. 특히 같이 먹는 사람이 있으면 더 행복하다.

스트레스 받을 때

나는 불행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에서 불행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스트레스 받는 경우를 고민해보았다.

  • 내가 해결 못 하는 문제가 있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안 나올 때,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이 안 움직일 때 답답하고 짜증 난다. 정말 미칠 것 같다.

  • 나에게 실망할 때: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싶은 순간. 내 한계를 마주할 때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렇지만 금방 털어낸다.

  • 실패할 때: 결과가 안 따라줄 때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못한 게 후회될 때 힘들다. 그때마다 내 가치가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고민이 너무 많을 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멈추고 싶은데 멈추지 못할 때. 감정도 무뎌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행복 방정식

이런저런 다양한 고민을 해봤지만 사실 한 줄로 딱 정리할 만큼 고민이 완벽하게 정리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민한 내용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정리해보았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고, 부담 없는 하루를 계획하며, 무엇이든 할 땐 집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시간 보내기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매일매일을 이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보고 다시… 고민해봐야겠다.

나는 럭키가이다.

벌써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겠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나를 위한 깊은 고민도 자주 한다. 또 감정 기복이 적어서 자주 즐겁고, 웃음이 많다. 긍정적인 성격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짜증은 날지언정 화는 잘 안 난다. 운동을 좋아해서 건강하다. 자기관리가 즐겁고 나를 가꾸는 게 재밌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성장하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한다.

내년이면 이제 25살(반 오십!)이 된다. 앞으로 100년을 더 재미있고 가치 있게 살기 위해 미리 생각 정리하고 글로 남겨두었다. 미래에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면 24살 때의 나를 돌아보고 정리해봤으면 좋겠다.

언젠가 다시 정리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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